예술가 흔적으로 찾아가는 제주의 매력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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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흔적으로 찾아가는 제주의 매력①
  • 오팔뉴스
  • 승인 2020.09.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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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현대미술관

"아름답다, 신비롭다."

제주도의 자연을 보고, 느낀 사람들의 말이다. 화산섬 특유의 모습과, 다양한 식생분포는 육지와는 다른 매력을 자아낸다. 물론 제주의 매력은 자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제주도는 지질·환경 특성상 벼농사가 어렵고, 육지에 비해 다양한 곡식 및 채소, 과일을 재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제 거주민들에게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느끼며 다양한 문화예술을 꽃피워냈다.

제주도 면적은 1833.2㎢로 남한 면적 중 1.83%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인구수도 올해 8월 기준 67만2524명으로, 전국 5183만9953명의 1.3% 정도다. 그런데도 제주도에서 태어났거나, 머무른 예술가들은 상당히 많다. 이들이 거주한 곳이나, 이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곳은 관광지로 개발돼 많은 사람을 모으고 있다.

제주 중산간,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공간

대표적인 곳은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다. 이곳에는 제주현대미술관, 그리고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화가 박서보의 집, 김흥수 아뜰리에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예술인 수십 명도 입주해있다.

이곳은 제주 중산간에 있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우선 김흥수 아뜰리에가 보인다. 미술계 거장 김흥수 화백이 제주에 왔을 때 실제 창작활동을 하던 곳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2014년 이후부터는 여러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어서 만날 수 있는 곳은 제주현대미술관. 이곳은 김흥수 화백이 작품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건립된 미술관이다. 상설전시관에는 김 화백의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으며, 기타 전시실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곶자왈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야외에도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자체가 자연이 품고 있는 형태로 건립돼, 미술작품을 느끼기에도 좋고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외관과 안에서 바라본 '빛의 중정'

제주현대미술관에서 5~10분가량을 걸어가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나온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40년간 물방울 그림을 그렸다. 특히 6·25 전쟁 때 1년6개월가량 제주도에 머무르며 작품활동을 했다고. 그런 김 화백은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고, 220점의 작품을 도에 기부하면서 미술관이 건립됐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전시된 작품뿐만 아니라, 건물의 아름다움도 눈길을 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다 김 화백의 작업세계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김 화백의 물방울 작품을 모티브로, 빛의 중정과 전시실을 각각 구성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검회색의 건물 색깔과 빛이 통과되고 반사되는 유리창, 그 주변을 둘러싼 푸른 자연과 검회색의 돌담길은 아름다움을 더한다.

미술관 인근에는 저지오름 등이 있고, 곶자왈 지대이기 때문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고 힐링할 수 있다.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협재해수욕장이 나와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길목마다 다양한 맛집과 카페도 있어, 식도락 여행에도 적합하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제주도 공식 관광정보 사이트 비짓제주에 들어가면, 실제 이용자들이 추천하는 '제값하는 착한가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해시태그로도 볼 수 있다. 실제 도 차원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업체들을 막기 위해 자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위)와 추사관

'19세기 동아시아 최고 석학' 추사 김정희의 유배생활, 그리고 '추사체'의 완성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서 남쪽으로 20분가량 차를 타고 가면, 대정향교와 함께 조선 시대에 서예사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에서 최대 업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와 그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제주 추사관'을 만나게 된다.

대정향교는 조선 태종 16년(1416)에 세워진 향교로, 터가 좋지 않다고 해 이사를 하다 효종 4년(1653)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졌다. 이곳은 추사가 유배생활을 할 때 학생들을 가르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역사와 건물 자체로도 매력 있지만, 그 뒤로 보이는 오름 등 자연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을 호강시킨다.

근처에는 실제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됐을 때 머물던 사적 487호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가 남아있다. 그는 66세 되던 해에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돼 약 9년의 유배생활을 한다. 그 중 8년3개월을 이곳에 머문다. 추사는 이곳에서 '머물기만' 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성찰해 '추사체'라는 글씨체를 완성한다. 또한 국보 제180호 '세한도'도 유배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낸다. 추사의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이 예술로 승화된 증거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추사관 건물 자체의 매력도 넘쳐난다. 추사관은 추사에 대한 외경심을 담아 은거와 유배를 기념하는 건물로 지어졌다.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인 승효상이 설계한 것으로, 2010년 건축문화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추사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가 건축미에 잘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전시실을 지하에 배치했지만, 답답하지 않도록 높은 층고와 자연채광이 되는 창문이 설치됐다. 또한 내부는 노출콘크리트로 만들어 특유의 엄숙함과 절제미, 나아가 유배지에서 생활한 추사의 감정도 조금이나마 느껴지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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